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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Humanities

초기불교에서 본 '무아의 윤회': 업의 자아의 윤회 (4) - 나오는 글

by Moonshot Luxury 2016. 11. 13.

초기불교에서 본 '무아의 윤회': 업의 자아의 윤회

 

::::: 목 차 :::::

1. 들어가는 글

2. 무아

3. 윤회

4. 나오는 글 







4. 나오는 글

 

처음 문제로 돌아가 '무아의 윤회'를 다시 생각해 보자. '무아''윤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입장에는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실체주의와 반실체주의라는 두 태도가 있고, 이 두 태도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서로 상이한 윤회와 해탈/열반의 개념이 있게 된다.

따라서 '유아윤회냐 무아윤회냐''유아해탈이냐 무아열반이냐'의 문제는 자아에 관하여 실체주의 입장(유아론)을 취하느냐 반실체주의 입장(무아론)을 취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즉 실체아의 인정과 불인정의 문제로 귀착된다. 불교의 반실체주의 입장에서 본 '윤회''열반'은 무아를 요구하여 무아, 열반, 윤회의 이 셋은 모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는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 개념들이다. 그래서 '유아'라면 불교가 말하는 윤회와 열반이 가능하지 않다.







초기불교의 무아론의 한 특징은 의식이 조건적이라고 본 데 있다. 의식은 어떤 경우에도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주체일 수 없다. 항상 명색/몸이나 대상에 의존적으로만 기능한다. 이러한 의식의 속성은 생과 생의 연속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식은 명색과 결합해야 하거나 부모의 성행위와 가임기와 결합해야 한다. 의식이 적절한 조건을 만났을 때만 한 생에서 다른 생을 계속하는 윤회가 가능하다.

'무아의 윤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무아의 윤회'를 중생의 심적 구조로서 12연기, 오취온적 자아, 그리고 업/행위의 자아에 의해서 설명해 보았다. 탐진치라는 근본번뇌로부터 비롯되는 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리하여 후속하는 11지가 조건적으로 발생을 계속하는 한 중생은 윤회한다. 또한 오온을 자아로 집착하여 그것들을 희구하는 한 중생은 윤회를 계속한다.

그런데 12연기, 오취온적 자아, 혹은 다른 어떠한 설명방식을 취하든지, 의식 업과 갈애를 전제·수반하는 의식 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의 윤회를 설명하는 핵심에 놓여 있다. 이를 가리켜 의식, , 혹은 갈애/집착에 의한 무아의 윤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이러한 무아 행위/업으로서의 자아 의 윤회는 연기법의 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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