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대화편 <국가>에서 지적인 생활이 최하의 무지로부터 최고의 인식에까지 발전하여 가는 과정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발전을 그의 이른바 '분할된 선'으로써 묘사하였다. 즉 네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 네 부분으로 하여금 억측(conjecture), 신념(confidence), 지성(intellect), 사유(thought)라는 지적 발전의 네 단계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처음의 두 단계는 양쪽이 다 속견의 경지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는 좀 더 사이비적이며 하나는 좀 더 쓸모가 있는 속견이라는 점에서 양자가 다르다고 하겠다. 마지막 두 단계는 이에 비하여 양편이 다 인식의 경지에 있는 것이지만, 하나는 좀 더 기본적인 인식이요 하나는 좀 더 고도화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억측은 예컨대 적의 힘을 그의 키에 의해서 평가하는 경우와 같은 선입견이나 피상적으로 한 번 흘낏 보거나 주관적인 기분에 따라서 내리는 불시의 판단이나 짐작이다. 신념은 어떤 이상의 실례가 여러 차례 쌓인 것을 토대로 하여 내린 판단이다. 그리고 신념은 그 실례들이 얼마나 잘 선택되었는가, 실례들의 선택의 바탕이 된 경험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 일반화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 실례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체계화하였는가 등의 몇 가지 근본이 되는 원인에 따라 그 권능이 달라진다. 예컨대 의사가 어떠한 풀을 어떤 병에 대한 치료약이라고 판단할 때, 그것은 하나의 신념이다. 그러한 신념은 거짓일 수도 있고 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념은 억측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개별자의 관찰을 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데아나 원리의 인식에도 도달하지는 못하며, 그 신념의 소유자로 하여금 새로운 정세를 처리해 나갈 수 있게 해주지 못하며, 따라서 복잡다단하고 변전 무상한 현실 세계 속에서 우리의 활동을 지도해 줄 만한 믿음직한 토대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분할된 선의 셋째 및 넷째의 부분인 지성과 사유는 인식이며, 그 속에는 이데아의 인식도 포함된다. 이 둘은 마치 속견의 경지에 있는 억측과 신념이 그러한 것과 꼭 같이, 체계화의 정도에 그 차이가 있다. 지성은 예컨대 기하학자가 눈앞에 많은 도형을 놓고서 완전한 원의 성질을 생각할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설령 단일한 이데아일지라도 어떤 이데아가 파악되었을 때 생기는 향상된 인식이다. 그러나 이데아들은 개별자와는 달리 논리적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서로 다른 이데아를 포섭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다른 이데아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긴밀하게 결합하여 기하학과 같은 체계를 이룰 수가 있다. 만일 우리가 단일한 이데아나 또는 몇 가지 이데아들의 직관을 넘어서 논리적인 관계로 맺어진 이데아들의 통일적 체계를 형성해 갈 경우에는, 분할된 선을 최후의 부분인 동시에 지적인 생활의 최고의 경지인 사유의 수준에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와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이성의 이상적 목표에 도달한다면 온세계에 대한 참된 설명이라 할 수 있는 통일된 지식 체계를 얻게 된다고 플라톤은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모든 시대와 모든 존재의 관찰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깨달으며 또는 직관할 수 있는가 경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이 사실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영혼들은 태어나면서 이데아들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지상의 경험이 영혼을 자극하여 그 영혼이 탄생 이전에 알고 있었던 어떤 이데아들을 상기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 인식은 상기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우리가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누이 역설하였고 지적 생활이 지성의 경지로부터 사유의 경지에로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올라갈 수 있는가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개별자들에 사로잡혀 이데아의 왕국에로 정신을 높여 가는 일이 드물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조국의 소수의 정선된 젊은이들에게 지적인 생활의 본질을 통찰케 해줄 만한 고도의 교육 과정을 모색하였다. 이 교육 과정은 수리적인 학문산술학.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 변증론들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학문들은 직접적으로 이데아를 다루며, 또 그것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그렇게 얻어진 인식 체계가 그처럼 연역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철학자가 할 일은 선제를 그냥 받아들이지만 말고, 검토하고 그들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되 이 과정을 인간 사유의 극한점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사유 방식이 이데아를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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