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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Humanities

플라톤의 이데아론 2)이데아와 사물들과의 구체적 관계

by Moonshot Luxury 2016. 11. 8.

2)이데아와 사물들과의 구체적 관계

 

사물은 그의 이데아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는 것이요, 그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만이 그것의 존재근거를 갖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물은 이데아에 참여(participate)하여 그 성질을 분유(participation, methexis)하는 것이다. 이데아란 사물을 평가하는 표준이요, 사물의 원형이요, 그 본질인 데 반하여 사물이란 이데아를 묘사한 것 즉 이데아의 모방(imitation)이라고 하겠다. 플라톤은 대화편 <향연(Symposium)><파이돈(phaedo)>에서 이데아는 모든 사물 속에 현현(present, parousia)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사물들은 이데아를 내포함으로써만이 그 내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이 이데아에 참여(participate)한다는 것과 이데아가 사물 속에 나타난다(presence to)는 것은 무슨 뜻일까.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즉 우리는 눈과 불이 상쇄적인 것임을 안다. 눈은 불에 닿으면 녹고, 눈에 닿으면 불은 꺼진다. 이 양자는 배타적인 이유는 눈은 냉의 이데아에, 불은 열의 이데아에 참여하여 그 성질을 분유해 있기 때문이다. 냉과 열은 본질상 상호 배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눈과 불 역시 배타적인 관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또 플라톤은 대화편 <파이돈(phaedo)>에서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미의 이데아에 참여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아름답던 것이 아름답지 않게 되는 것은 거기서 미의 이데아를 분유(participation)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물이란 불완전하고 피지배적이며 가멸적이며. 이데아에 인식에 불필요한 것으로 묘사되어 플라톤이 경험적인 대상을 배척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라톤에 있어서 감각의 대상인 현상의 세계가 우리를 미망으로 이끄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이성의 능력을 감성보다 중시하려는 의도의 발로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인식하기 위해서 경험적인 대상을 통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성계의 사물들은 매개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현상계의 불완전한 모형이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도록 이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초월적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는데, 피타고라스의 영혼 불멸설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기 이전에는 본래 천상계에서 이데아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혼이 지상계로 내려올 때, 망각의 강인 레테(lethe)강을 건너면서 이데아에 관한 지식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지상계의 인간 육체에 갇히게 되었다. 따라서 지상의 인간은 잠자고 있는 영혼을 일깨워 철학적 사유를 통해 희미한 기억을 상기해 냄으로써 본래의 진리 세계를 회상해 내고 자신의 영혼을 정화시킴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플라톤은 감성적인 대상을 순수하게 참된 것과 전혀 허망한 것의 중간 즉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에 위치시켰다. 재래의 사상이 너무 지나친 이원론에 빠져 있음을 깨달아 이를 극복하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이데아의 특성을 정리해 보자.

첫째로, 수많은 기체들이 공통된 명칭을 가질 때 그것들은 하나의 이데아를 갖는다고 하여 이데아는 보편적 성질을 띤다. 현상계의 서로 조금씩 다른 수많은 집들이 어떤 성질을 공통으로 지니고 있을 때 그것들을 집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칭하는데, 플라톤의 이데아는 분명히 이러한 개념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개념으로서의 이데아의 성질을 우리는 이데아의 논리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앞서 우리는 플라톤이 이데아는 영구불변의 참다운 것이요, 이에 반해 변화하는 구체적인 사물들은 참다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변화하는 사물들에 대한 인식은 억견에 불과한 것이요, 이데아에 대한 인식만이 참다운 지식이라고 했었다. 나아가서 플라톤은 참다운 지식은 감각의 도움을 조금도 필요로 함이 없이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는 인식의 영역이 감성계가 아니라 예지계임을 암시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논의들은 바로 이데아가 인식의 참다운 대상임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식론적인 면에서 볼 때 이데아는 인식의 대상이 된다.

셋째로, 이데아는 경험적인 사물들의 존재근거. 사물 속에 현현된 이데아는 바로 사물의 본질이고 사물들이란 이데아를 모사(imitation)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이데아의 존재론적인 면이다.

넷째로, 이데아는 불완전한 사물들이 지향하는 바 목표인 이상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이데아의 목적론적인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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