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Platon, 427-347 B. C.)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Aristokles)이고 아테네의 귀족 출신이다. 20세 경에는 소크라테스(Sokrates, 469-399 B. C.)의 문하에 들어가 그가 장려하던 토론의 열렬한 참여자가 되었다. 원래 정치적 야망을 갖고 있었으며 실천적 의지에 불탔던 플라톤은 일생을 통하여 그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탐구 정신과 목표와 방법의 감화를 받았다. 플라톤 당시의 아테네는 정치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귀족 출신은 일반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는 시대였으며, 이에 부합하여 플라톤은 정치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의 부패된 민주주의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사형에로 이끈 것을 계기로 하여, 아테네 정치에의 관심을 끊고 소크라테스를 그의 이상적인 철인의 화신으로 삼아 철학에의 길에 안주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 동안 시칠리아 섬에서 시라쿠사의 지도자를 도와 종종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보고자, B. C. 367년과 그 뒤 한두 번에 걸쳐 그 곳에 갔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의 강직하고 이상주의적인 노력은 은연 중에 반대와 음모에 봉착하여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테네에서는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실제적인 면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40세 경에 아테네 서북쪽 교외의, 영웅 아카데모스에게 제사 드리는 성역에, 제신의 이름에 따라 아카데메이아라 불리는 학교를 설립하여, 연구, 교수 활동을 하였다. 이것은 역사상 아테네의 네 학교들 중에서 최초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에 있어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었다. 세상의 평판에 의하면 이곳에서 그는 철학적 문제에 관해 강의도 하고, 또 토론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사람들에게 개인 생활이나 국가 문제에 있어서의 지침이 되리라고 생각된 원리들을 이해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저서를 통해서나 또는 아카데메이아에 있어서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가 끼친 영향은, 그 당시에는 물론이요, 오늘날까지 2000년 이상이나 서구 문명 속에 강력한 하나의 힘으로써 맥맥히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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