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책, 그 안에 담긴 철학 세계
국가론(國家論; Politeia)
플라톤의 가장 위대한 저서일 뿐 아니라 《법률》과 함께 가장 방대한 저서이기도 하다.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1권은 초기 저작으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설명하는데 머물러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중기 후반부의 저작들로 그 자신의 사상이 충분히 전개되어 있다. 이 저서는 저술 양이 워낙 많은 만큼 형이상학, 인식론, 정치사상, 심리학, 교육학, 예술론 등 철학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정의(正義)의 문제, 국가 구성에 필요한 지혜자/ 용사(勇士)/ 절제자 등을 구분하고 통치자의 공동생활과 재산과 가족의 공유를 논하며(5권), 철학자의 삶과 선의 이데아, 앎의 단계에 따르는 동굴의 비유, 귀족정치를 최상의 정치 체제로 보고 귀족 정치제의 변질 정도에 따라 금권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 참주정치 등의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8권).
마지막 권인 10권에서는 용감한 전사(戰士)였던 에르가 전사(戰死)한 뒤 그 시신을 화장하려는 순간 다시 살아나 그의 영혼이 저승에서 본 일을 이야기하는 에르(Er) 신화(神話)가 쓰여있다. 정의의 응보에 있어서의 영혼의 불사, 이승에서의 응보와 저승에서의 응보에 관한 이야기이다.
법률(Nomoi)
법률 뿐만 아니라 인간성 전체에 관한 날카로운 고찰이 시도되고 있으며 교육론이 비중있게 전개된다. 또 플라톤의 무신론에 관한 논난은 그의 신관을 보여준다. 가장 특징적인 사실은 그의 모든 대화편의 주인공인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주창한 이상국가가 최선의 국가 형태라면 법률에서는 토지와 재산, 처자의 사유(私有)가 허용되는 차선책의 국가론을 피력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의 재판 장면에 대한 술회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神)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었으나, 그는 이에 대하여 당당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이 변론은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眞髓)로서,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판결·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 문학은 때로 작자의 창작이 섞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저작의 주요 부분은 역사적으로도 충실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문체로서는 플라톤의 작품 중 백미(白眉)에 속하고, 예로부터 그리스 문학사상 산문문학의 주옥편으로 중히 여겨왔다
소피스테스(Sophistes)
《소피스테스》는 《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정치가》와 함께 다른 대화편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다른 대화편들에서는 항상 화자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이 대화편에서는 단지 참석자로만 등장한다. 또 주고받는 담화의 형식이 이 대화편에서는 예증하는 논증의 방식으로 바뀐다. 이 대화편은 소피스트를 정의하는 문제로 시작한다. 소피스트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 일단 그들을 기술을 행하는 자라고 포괄적인 규정을 한다. 그리고 나서 나눔의 방법을 통해 기술을 교환술, 논쟁술, 제작술 등으로 세분하며 소피스트에 대한 정의에 이른다. 그러나 이것이 이 대화편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다. 플라톤은 정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형상이 어떻게 다른 형상들과 관계하는가를 보이고자 했다.
분석과 나눔의 방법을 통해 정의에 이르는 과정은 형상의 복합적 구조를 살피기 위해 그대로 적용된다. 플라톤은 선과 같은 보편적 개념이 어떻게 하부 개념으로 분할되는지를 설명한다. 하나의 형상은 유와 종에 따르는 무수한 다른 형상과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은 원자적 형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질료적인 것 또는 감각적인 것에까지 이르지 않는다. 《소피스테스》에서 형상적 존재가 위계질서를 가지고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밝혔지만 여전히 질료와 형상, 즉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의 분리된 상태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는 《티마이오스》에서 무규정적 상태와 수학적 질서의 관계를 통해 다시 논의된다.
또한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거짓 명제란 없다는 소피스테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거짓 진술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단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함축을 가지고 있다. 파르메니데스 이후로 비존재는 없는 것으로만 간주되어 왔다. 거짓 진술은 존재에 대한 비존재적 진술이므로 논리적으로 거짓 진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플라톤은 운동과 실재와의 관계를 통해 존재가 있고 또한 비존재가 있음을 밝힌다. 형상은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의 원형으로서 그것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형상은 보편자로서 하나의 개념이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인간의 사고가 개념들의 결합과 분해에 기초하는 한 결국 논리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이 불가분한 관계에 있음을 전제한다(두산동아).
크리톤
공동체의 법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문제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지우(知友)의 이름이다. 이 대화편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논리문제를, 개체와 국가 또는 법률과 결부시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단지 머리로 생각하는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생사를 언급하며 얘기한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 새벽에 모든 준비를 다 갖추고 외국으로 탈출할 것을 권고하는 크리톤의 권고를 거절한다. 당시의 재판 과정과 관행 등을 볼 수 있다.
테아이테토스(Theaetetvs)
지식의 본질과 범위, 절대적 지식의 성립가능성에 관한 논의
지식에 대한 정의로서 선결문제해결을 요하는 것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유전설과 프로타고라스의 인간만물 척도설 등의 주관적 학설을 비판한다. 이어 테아이테토스가 "지각이 앎과 동의어가 아니라 진위(眞僞) 가운데 진(참됨)만이 앎"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람을 논파하고 꿈 이야기를 통한 앎과 형상(形相)과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논한다.
티마이오스(Timaios)
우주 생성론과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지위에 관한 논의
원래 이 대화편은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를 포함하는 3부작의 첫 부분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한 저작은 《티마이오스》뿐이다. 주제는 물리학·생물학·천체학 등과 관련된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우주는 지성에 의해 파악된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 원리가 발견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우주가 지성적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최고의 이데아는 선(善)의 이데아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선의 이데아를 통해서 자신의 완전성을 구현하게 된다. 이것은 우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선의 이데아가 창조의 원리가 된다. 이 원리를 의인화 한 것이 《티마이오스》에서 우주의 창조자로 등장하는 데미우르고스이다. 이 말은 넓은 의미에서 '창조하는 자'를 뜻한다. 그는 무엇을 창조하든 '좋음'을 실현하는 자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은 무엇을 본뜨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주도 어떤 존재하는 원형의 모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톤은 자신의 우주론을 우주에 대한 참된 설명이 아니라 모상에 어울리는 설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물·불·공기·흙이다. 그러나 그는 고대의 원자론과 달리 이 요소들에게 실체의 성질을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단지 속성들에 불과하여 기하학적 형태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실체적 원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아무런 규정도 받지 않은 어떤 것들이 수학적 질서를 부여받아 구체적 사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학적 비례, 비율, 도형, 수, 모자름과 지나침 등의 수학적 개념이 세계를 지성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좋음'이라는 가치 개념은 결국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지성적 개념인 것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수학적 질서에 근거하여 힘, 시간과 같은 물리학적 문제들과 인체의 구조, 기관 등의 생물학적 문제들을 설명한다.
플라톤은 이 우주가 지각될 수 있는 신으로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유일한 천구라는 말로 《티마이오스》를 끝맺고 있다. 과학적 사실과 정신적 가치가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이 대화편은 수세기 동안 서구의 우주관을 형성했다(두산동아)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플라톤 자신의 이데아론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대답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엘레아학파의 존재론과 변증법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의 초기 이데아론을 발전시켰다. 플라톤의 초기 이데아론을 통해 여럿의 개별자만 있고 보편적 일자는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반대로 보편적 일자만 있고 여럿은 없다는 파르메니데스 사이에서 개별자들은 이데아를 분유하여 존재론적 의미를 갖게 되고 이데아는 경험적 영역을 밖에서 개별적 사물의 원형인 보편적 존재로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같은 초기 이데아론은 파르메니데스로 대표되는 엘레아학파에 의해 보다 발전된 문제를 안게 된다. 과연 개별자의 수만큼 이데아의 수가 존재하는가? 이데아들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개별적 사물과 그것의 이데아가 ‘닮음’의 관계에 있을 때 이 ‘닮음’을 말하기 위해 또 다른 ‘닮음’을 설정해야 하는 무한 소급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제기의 기초는 하나와 여럿이 양립할 수 없다는 엘레아학파의 존재론에 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 대화편에서는 ‘가설적 방법’이 사용된다. 이것은 엘레아학파의 존재론에 따라 하나의 가설을 설정하여 그 가설을 긍정할 때의 결론과 부정할 때의 결론을 서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플라톤은 이 과정을 통해 명시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복잡한 논증을 통해 엘레아학파의 논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하나와 여럿의 양립 가능성을 치밀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 대화편은 이데아론의 발전 과정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두산동아).
파이돈(Phaidon)
죽음에 직면한 철학자
아테네의 감옥에서 죽음에 직면하여 소일하던 소크라테스의 나날을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영혼불사(靈魂不死)의 증명을 주제로 삼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본래의 목적은 필로소피아란 죽음의 훈련이며, 무덤으로서의 육체에 대한 초극이라는 입장에서 항상 영원한 실재(實在)를 생각하면서 사(死)와 생(生)에 관한 사색을 깊이 해갈 것을 권장하는 데 있다[두산동아].
파이드로스(Phaidros)
부제(副題) : ‘미(美)에 관하여’ 또는 ‘사랑에 관하여’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 첫째 주제는 특히 《고르기아스》와 깊은 관계를 가진 변론술(辯論術)의 로고스적 음미이며, 또 하나의 주제는 《향연(饗宴)》이나 《이온》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적(神的) 광기(狂氣)로서의 사랑의 문제이다. 이들 주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철학자의 정의(定義), 방법의 문제, 로고스(言語)의 문제, 영혼의 윤회와 불사(不死)의 설명도 있다[두산동아].
향연(饗宴; Symposion)
미의 신 에로스에 대한 대화
플라톤 대화편의 걸작의 하나로 꼽히는 작품. 비극시인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축연(祝宴)에서 에로스에 대한 찬미연설을 아리스티데스로부터 전해 들은 아폴로도로스가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즉 축연에 모인 손님들은 차례로 연애신(戀愛神) 에로스에 대한 찬사를 하게 되었는데, 파이도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릭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에 이어 소크라테스가, 옛날에 무녀(巫女) 디오티마에게서 들은 연애관을 피력한다. 육체의 미에 대한 추구에서 영혼의 미에 대한 추구로 승화되고, 마침내 미 자체의 관조(觀照)에 도달하는 것이 연애의 올바른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때 소크라테스의 신봉자 아르키비아데스가 취해서 들어와, 에로스 예찬을 갑자기 소크라테스 찬미로 바꾸어 버린다.
이 밖의 작품들
《라케스》 , 《뤼시스》, 《메논》,《아이온》, 《에우티데모스》, 《에우티프론》, 《카르미데스》 , 《크리티아스》, 《크라틸로스》,《폴리티코스》, 《프로타고라스》 , 《필레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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