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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Humanities

삶의 궁극적인 문제 -자아의 정체성(『소유냐 존재냐』의 간단한 요약)

by Moonshot Luxury 2016. 11. 6.

위대한 약속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는 생산력의 증대는 유토피아 건설의 초석이라는 주장입니다.

원시시대, () 산업시대에는 정치적 지배구조라든가 다른 국가와의 전쟁이라든가, 아니면 한 국가 내부에서의 갈등 같은 것들은 쉽게 이야기 해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산업혁명 이후 생산력이 급증하면서 "물자"가 풍부해지면, 모든 국가간의 다툼(물자가 부족해서 발생하는..)이라든가 사회내부에서의 갈등(말하자면 빈부격차, 불평등 같은 것들인데, 이 역시 근본적으로는 풍부하지 못한 재화로 부터 비롯된다는...)

같은 것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인간은 "물질적 풍요"만 보장된다면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질적인 관점만을 심하게 부각한 점이 있음을 인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역사는 언제나 발전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주장입니다.

그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5천년전보다 현재의 과학, 정치, 교육, 생산력 등등이 훨씬 발전한 상태이므로, 시간만 흐르면 인간의 모든 과확, 정치, 문화등은 늘 발전하는 쪽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나즈막한 "Fuck you!"를 날립니다.

 

"인간의 머리는 인간을 달에까지 보냈지만, 인간의 가슴은 원시인의 그것과 틀린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원시인들보다 현대인들이 더 행복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물질적인 풍요가 (대다수)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위대한 약속"이라는 것이고, 소유냐 존재냐에서 프롬이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위대한 약속이 틀렸음은 현대 사회의 여러 징후들에서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자 그럼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난 누구냐?"...

그러나 그 간단한 질문 이면에는 수 많은 의식적/무의식적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나는 지금 '제대로' 혹은 '인간답게' 혹은 '행복하게'살고 있는가?" 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인간의 행복이 "물질적인 소유"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뻐꾹이에 개피본것 처럼, 개인적인 인간들의 정체성 역시 개피보고 있다는 것이 현대사회입니다.

뭔 소린고 하면, "위대한 약속"이 물질적인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개념은 이미 개인들에게도 침투된 사상입니다.

그 일례로 현대인들은 행복해지기위해 ''에 집착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름다움과 TV에서 열심히 선전하고 있는 각종 상품들을 사 모으는 것에 열중하고 있지만, 그런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개인이 행복해지는 가장 필수조건은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 음식을 다 경험해본 결과 그래도 김치찌게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 결론이 나면 누가 뭔 협박을 해도 김치찌게가 먹고 싶은 때는 김치찌게를 먹는 것이 자기 정체성의 확립입니다.

헌데, 내 앞에 이쁜 가스나 한명이 내게 찐한 눈빛을 주고있는 상황에서 냄새 풀풀나는 김치찌게 시켜먹으면 쪽팔릴것 같아, 정말 메스껍지만, 니글니글한 스테이크 시켜 먹는 것은(아 물론,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사회적 욕구(..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성적욕구지만...-_-;;;;)에 자신이 휘말리는 경우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어떤 학생은 자신이 정말로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헌데, 미대에 가겠다고 하니까 부모님 부터 난리입니다.

"그거해서 너 밥이라도 제대로 먹겠냐" 부터 시작해서 "너 임마..장가도 못가~~~!!!"까지...

그도 그럴것이 이 학생 장가가기 힘들다...라는 협박에서는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다시 의대에 가기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스갯 이야기로 예문을 든 것이니 너무 의미는 두지 마시구요...

 

인간의 정체성은 항상 사회적인 관계속에서 위협을 받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일 수록, 확고한 지위를 확보한 타인(일테면..이쁜 가스나, 혹은 울 학교 짱...하다못해 우리학교 불량서클 노고지리의 멤버되기..기타 등등..)을 소유하고자 함으로써 자신의 불안한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내가 노고지리 멤버얌마..까불지마..." 같은식의...-_-;;;;)

혹은 현재 욜나 잘팔리고 있는 베네통가방(..유행에 둔감해서 잘 모르지만...), 나이키 운동화, 구찌 구두..등등의 제품 같은 것을 소유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김치찌게를 좋아하고, 울 엄마를 좋아하고,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김씨집안의 장남 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보다는 이쁜 박모양의 남자친구임으로 남자로썬 꽤 괜찮은 마스크 인정받았고, 노고지리의 멤버이면서, 명품으로 치장한 김**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하는것이 더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결국..30살이 되도록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취미, 여행지가 어딘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자기자신을 알아가는 일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인데, 내 주변의 아버지/어머니, 우리 자기야, 그리고 내 새끼들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친구놈들, 직장 동료들 웬수같은 직장 상사들을 이해하고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인간의 정체성은 그들 자신만의 꾸준한 노력 속에서 서서히 확보되어 가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본래부터 그런 놈이야"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아버지와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나 김**", "우리 자기야와 어째저째했던 나 김**"같은 타인과의 관계들을 통해 더 많이 확보되는 것이고, 그런 인식들 속에서 비로서 "나 김**은 어떤 놈이고 어떤 인간이다"라는 인식이 확립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죠..뭐 면밀히 말하자면 디아블로 2라는 게임에서 "할배검"이 퍼보석 몇개짜리인지에는 관심이 가더라도 할배제사가 언젠지는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정체성 확립이라는 단어 자체에 현대사회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미쳐버리고 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것도 베네통가방에 나이키 운동화에 걍 얼굴이쁜 마네킹 같은 순이와의 관계같은 허상같은 "정체성"이 깨지고 나면...걍 미쳐버립니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중요한 "정체성"확보 같은 것은 오랜 기간의 "경험"같은 배부른 소리 지껄이지 말고, "돈주고 사"같은 헛소리로 확보하라고 은연중에 강조하죠...

 

결론적으로 위대한 약속이 헛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행복은 "물질"에 달려있다는 사회적인 통념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행복 역시 '무엇'을 소유(물질은 소유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은...소유가 안되죠...)함으로 얻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 "정체성 확립"은 많이 닮아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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