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아 [自我, ego] ;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
따라서 그것은 그때그때의 사고 ·감정 ·의지의 각 작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동일성을 지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자아의 구체적 내용은 그때그때의 각 작용의 내용과 관계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에 반성의 눈을 돌림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자아란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
철학상 자아의 자각은 ‘너 자신을 알라’를 가르친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는데, 자아의 문제가 철학의 주제로 된 것은 인간의 주체성이 확립되는 근세 이후의 일이다. R.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에 의하여 ‘생각하는 나’를 정신이라 부르고, 이를 항상적 실체로서 확립했으나, D.흄 등의 영국 경험론은 그때그때의 감각 ·감정을 떠나서 자아는 없고 그것들의 총체가 바로 자아일 따름이라고 하여 자아의 정신적 실체성을 부인하였다.
이리하여 자아의 정신적 실체성을 주장하는 합리론의 입장과, 그것의 감각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경험론의 입장이 서로 대립하는데, 이것에 인식론의 관점에서 해결을 부여한 것이 칸트이다. 칸트는 자아의 실체성은 이를 부인하지만, 그러나 인식의 가능성의 근거는 경험적 자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적 표상(表象)에 필연적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통각(統覺), 즉 선험적(先驗的) 자아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독일 관념론의 J.G.피히테는 이 선험적 자아를 형이상학적으로 절대화하여 전실재(全實在)를 포괄하는 절대적 자아를 구상하였다.
현대철학에 있어, 자아의 문제는 이러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관점보다 오히려 윤리적 ·인간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 논문 <자아의 초월>(1934)에서 모든 표상에 ‘나는 생각한다’가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칸트적인 선험적 자아를 부인하면서 《존재와 무(無)》(1943)에서는 ‘나’의 존재가 타자(他者)에 의하여 근저로부터 위협받고 있음에 언급하고, 자아는 그 존재의 근저에 있어 대타적(對他的) 존재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버는 《나와 너》에서 ‘나와 너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너’라고 부르는 타자(他者)와의 만남과 응답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한 자기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자아에 대해서 극히 명확한 의의를 부여하고 임상심리학 및 일반심리학에서 채용하고 있다. 즉, 인간의 원시적 비인격적 무의식충동(이드)의 욕구가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긴장을 벗어나고 고(苦)를 피하려고 하는 쾌원리(快原理)를 좇아 작용할 때, 의식의 표면에 발생하는 것이 자아이다. 자아란 원시적 충동과 현실의 외계와의 중개자이다. 또한 사회적 규범에 따라 주어지는 상벌 ·금지 등에 의하여 개인의 내부에 정사(正邪)의 의식이 생기고 그것이 자아를 비판한다. 이 부분을 초자아(超自我)라고 한다. 즉 인격은 ‘이드’와 ‘자아’와 ‘초자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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