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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Humanities

자아의 문제-내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나"에 대한 기독교적 단상

by Moonshot Luxury 2016. 11. 6.

1. ‘라고 하는 곤혹스런 존재

 

인간은 결국 ''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를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워도 항상 내 안에는 ''의 냄새가 남아 있다.

이미 승부가 난 싸움일까. 바로 ''와 투쟁하는 것이.

나에게서 ''를 비워내는 작업도 내가 해야 한다.

내가 가진 능력과 지혜를 견고히 묶어버리고 대신 성령을 모셔야 하는 것도 결국 ''이다.

성령님은 나의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이 일하시기도 하지만, ''라고 하는 자아를 움직이셔서 일하기도 한다.

 





2. 희생은 남을 위함인가, 나를 위함인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희생'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희생이라는 것은 제3자의 말이다. 적어도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의 말은 아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행동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희생이라고 말하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기쁨이요, 영혼을 풍요하게 살찌우는 것이기에 그것처럼 큰 축복을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스스로 희생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불행이다.

희생의식을 갖고 일하면 스스로 지치기 시작한다. 기쁨을 잃고 끝내는 도중하차하게 된다.

희생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미 비전과 열정을 상실하고 목적성마저 희미해졌다는 얘기가 된다. 하는 일이 너무 힘이 들 때, 희생의식을 갖기 쉽다.

희생이 어디 있는가. ‘를 위함이다.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나를 위함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함이다. 내 영혼이 아주 탐스럽게 영글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주를 위해 어려운 작업들, 봉사와 전도와 사랑의 헌신들을 해내고 있다면, 내 영혼이 너무나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쪄가고 있는 것이다.

관심이 나에 집중되어도 좋은 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 아닌가.

 






 

3. 사랑은 남을 위함인가, 나를 위함인가, 혹 서로를 위함인가

 

사랑? 사랑의 행동은 쉬워도 사랑의 감정을 갖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자기가 원한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모순인가.

남을 사랑하는 기쁨 때문에, 그 기쁨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남을 사랑하는 것을 잘못인가.

사랑은 남을 향한 시선이다. 그런데 그 시선을 자기 자신을 향한 채 남을 사랑하는 것은 가식인가.

사랑이 서로를 위한 것임은 자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면, 남을 사랑함에 있어, 자기 자신을 위함도 소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것이 결코 자기파괴가 아닌 한, 자기를 지키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이 부분을 놓치고 살아온 것아 아니냐.

 

 






4. ‘를 위한 복음 전파

 

죽어가는 영혼을 건지기 위해 아픈 가슴과 긍휼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다만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이 철저한 자기 만족이 잘못된 것일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최고의 자기 만족이기에 이 자기 만족을 추구하기 위해 하나님 영광을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일까.

 

 







5. 나의 실존

 

자신의 실존의식이 명확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잘못된 자기부정이 실존의식을 약화시키고 모호해진 실존의식은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자기중심적 성향과 이기적 욕망의 자아를 분쇄하는데 골몰하다 보면 자칫 자신의 실존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음에 주의하자.

하나님 앞에선 예배자로서의 는 흐릿해지면 안 된다.

오히려 의 선명성이 더욱 뚜렷해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6. 나의 생명력

 

넘치는 생명력은 뚜렷한 실존의식, 또는 개체의식으로 강화될 수 있다.

는 강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교감하는 자로서의 ’,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의 는 하나님의 또렷한 영상 못지않게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독생자의 피를 대가로 치룬 존재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왕권을 상속받은 나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만 매우 분명한 모습으로 무릎 꿇어야 한다.

 

 

 

7. 생각해 본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신체적 허약함이 혹 약해진 실존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그동안 나를 부정하기에 바빴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마치 악인 것처럼 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고 하는 자아중심적 성향은 너무나 큰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자로서의 모습까지 손상을 입었다.

잡초를 뽑다보니 소중한 곡물까지 손상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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