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 차이점과 유사성을 인지하는 "분석심(analytical mind)"
- 물리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반응심(reactive mind)"
- 분석심과 반응심을 바탕으로 컨트롤되며, 실제적인 행동으로 드러나는
"생활심(somatic mind)" 으로 나뉜다.
또, 모든 심신성질환, 특히 정신질환의 원인은 부정적인 자극에 의해 생성되는 "엔그램(engram)"으로, 이 엔그램은 세포에 깊이 새겨지며 "반응심" 에서 찾을 수 있단다.
세포단위에 엔그램이 새겨진다는 증거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을 보면,
"우리는 세포가 현재로서는 설명불가능한 방법에 의해 분명히 지각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정자와 난자가 수정할 때 인간의 영혼이 비집고 들어간다는 것을 사실로 가정하지 않는다면, 세포가 어떻게 지각능력을 갖는지 설명할 공준(公準, postulate)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라는데... 머, 한마디로 세포가 지각능력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데, 그에 대한 증거는 없다, 허나 아무튼지간에 세포엔 지각이 있다는 말쌈..
어쨌거나 이런 논리로, "E-meter" 라는 기계와 "오디터" 라는 치료사를 통해, 엔그램을 없애서 사람을 Clear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치료를 이들은 "오디팅(Auditing)" 이라 한다.
--((프레시안의 2005년 11월 5일자 "몸을 떠난 마음은 없다-김철의 '몸살림 이야기'<27> 몸과 마음의 관계 1" 내용 중 일부 발췌 ))--
몸에 대해 마음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그 역 또한 그대로 성립한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고 몸의 병이 마음의 병이 된다고 했을 때, 또 이를 뒤집어서 보면 몸의 건강이 마음의 건강을 가져오고 마음의 건강이 몸의 건강을 가져온다고 했을 때, 이미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 할 얘기는 다 한 셈이 된다. 결국 몸과 마음은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3~4회에 걸쳐 이 주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은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 몸이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고 얘기하기도 한다. 어차피 몸이라는 것은 죽어서 썩으면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 이 헛된 것에 망상을 가지고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것이다. 몸은 썩어도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든 윤회를 하든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 썩어질 육신에 매달리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신,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이 사람에게 '영'(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마음과 영혼을 구분하지 못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사람이 몸과 마음, '영'으로 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어서 이견만 분분할 것일 뿐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여기에서는 누구나 함께 경험하고 있고 경험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문제만을 다루기로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몸이 너무 아프면 하느님께 호소하려고 해도 기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우선 몸부터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무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다. 마음이 나지 않으면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몸'이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얘기할 때 "몸과 마음을 다하여"라고 하지, "마음과 몸을 다하여"라고는 얘기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라는 것이다.
욕구는 우선 몸이 바라는 바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이다. 우리 마음은 무엇인가를 바라다가 중지하고 또 바라다가 중지하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우리 몸은 그러한 바람=욕구에 따라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마음이 바라는 것은 실은 대개는 몸이 바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몸이 욕구한다는 것을 모르고 마음만 탓하는 게 마음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인간의 몸이 이 지구라는 자연 속에서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한 결과 탄생한 것이라면, 우리의 욕구라는 것도 실은 몸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과정을 잘 되짚어 보면 우리 마음에서 일었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이는 욕구의 실체를 쉽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도 기본적으로는 진화하는 과정에서 쌓인 것이다.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고안해 낸 기제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 복잡한 것 같아도 기본적인 욕구라는 것은 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욕구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욕을 넘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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