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자아관에 대한 김용옥 교수의 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구라로 근세철학의 아버지가 된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를 근세철학의 아버지로 만든 그 근대성(modernity)은 바로 그 구라의 명제속에 내재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즉 “내”가 생각해서 내가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어려운 말로 환원하면 나의 존재성을 보장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나의 사유가 곧 나의 존재를 보장한다. 곧 나라는 존재는 생각의 주체(res cogitans)다.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있다는 말은 지금은 매우 소박한 명제로 들릴지 모르지만, 데카르트가 살았던 그 시대에 있어서는 매우 혁명적인 그리고 너무나도 반역적인 명제였다. 교회(카톨릭)라는 보편적인 정치권력을 움켜쥐고 으르렁거리는 신부새끼들 귀에는 그야말로 너무나 시건방진 소리였다. 그들이 배워온 중세철학의 상식으로는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보편자가 생각해 주셔서 나라는 개별자가 존재할 뿐이다. 즉 신이 주신 본질이 나의 존재에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너무도 황당무게한 반역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생각의 주체”(res cogitans)로서의 ”나”를 외친 데카르트의 제 1 원리야 말로 서구라파 역사에 있어서 근대적 자아관(Modern Ego)의 최초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나의 존재성을 나의 생각으로 확보하려고 했던 데카르트의 자아관은 매우 혁명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상 자세히 뜯어놓고 보면 허술한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사실 제일류의 철학자란 이렇게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생각을 거침없이 해낸 사람들이며, 바로 그 구멍이 뻥뻥 뚫림이야말로 그 철학자를 제일류로 만들고 있는 일류성의 원천이 된다. 구멍이 뻥뻥 뚫림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여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각의 전기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대가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과거의 인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새로운 생각은 항상 과거의 인습과 마찰을 일으키지만 또 동시에 과거의 인습의 영향을 절단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새로운 생각 속에는 이렇게 소화되지 못한 혼돈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혼돈의 막중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어떠한 체계를 시도했다는 그 용기에 전기(轉機)적 사상가들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우선 데카트르의 근대성이 추구하려고 했던 새로운 우주의 모습의 전기는 데카르트 자신이 마련한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에게 충격을 준 것은 지금 우리가 근세 물리학의 아버지로 알고 있는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나 뉴튼(Sir Issac Newton, 1642~1727 : 뉴튼은 시대적으로 데카르트보다 후대이지만 우리의 논의는 그 시대정신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이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理神論的 우주다. 理神論(Deism)의 가설이란 이러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할 때 이 우주가 작동할 수 있는 理法마저 같이 창조하여 이 우주에게 주어 버렸음으로 하나님은 이 우주를 창조함과 동시에 이 우주와 손을 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하나님의 질투나 사랑이나 저주나 협박에 아랑곳없이 그 자체의 이법에 의하여 운행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법은 바로 “수학적 법칙”에 의하여 탐구될 수 있는 매우 합리적 질서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갈릴레오는 이 우주를 가르켜 “수학의 언어로 쓰여진 바이블”이라고 불렀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우주이지만 이 우주는 수학적 법칙에 의하여 지배될 뿐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끈적끈적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무색투명한 이법으로 되어 버리는 하나님이므로 우리는 “理神”(理法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理神論 이야말로 서구라파 사상가들의 가슴에서 중세기 정치질서의 종교적 독단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無神論의 최초의 체계적 표현이었다. 이신론은 무신론이다. 무신론이야 말로 근대정신의 출발인 것이다(Atheism is the beginning of modernity). 이러한 무신론적 사고가 수량화된 우주의 질서(mathematized cosmic order)의 탐구로 표출된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고전물리학”의 정체인 것이다.
데카르트 형님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생각한다”는 그 실내용이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의미다. 즉 “수학”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수학적으로 이 우주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바로 “사고”이며 이것을 그들은 이성(reason)이라고 불렀다. 이성(reason)이란 라틴원어로는 “라티오(ratio)가 되며 그 뜻은 단순히 “계산한다”(calculate)는 것이다. 이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주요능력으로서 확보되지 않을 때는 인간은 수량적 우주를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형님께서 나의 존재를 나의 사고에서 확보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음모는 바로 나의 이성적 능력에 의하여 당시 물리학자들이 제시하는 수량적 우주를 뒷받침해주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리학적 사고의 주체”야말로 근대적 자아관의 출발이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철학을 하늘에 매달려 있는 무슨 보물덩어리로 잘못 공부해온 우리나라의 大小 석학님들은 철학이 역사를 先導해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근세 서구라파철학의 역사란 기본적으로 근세 물리학이 제시한 합리적 우주의 정당화라는 테제를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않는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도 결국은 “물리과학의 이성”일 뿐이며, 순수이성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세계도 뉴튼 고전물리학의 세계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세계관의 전환은 철학자체의 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외적 요소에 의하여 도전을 받음으로서 일어난 것이며, 그러므로 철학적 우주관은 철저하게 그 시대정신의 지배를 받는다. 서양의 근세철학과 근세과학이 모두 동일한 시대정신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기술이 되겠지만 역사를 창조하는 창조력의 도수를 운운하자면 항상 과학이 철학을 리드했으며, 철학은 과학의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과학이 저질러 놓은 실수를 유창한 구라로 잘 얼버무려 놓는 시녀노릇밖에는 하지 못했다. 20세기 새로운 철학조류도 모두 그 철학이 의거하고 있는 과학적 세계관의 빽을 믿고 까불어댄 장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철학처럼 무능력한 구라는 없는 것이다. 서양중세철학이 신학의 노비였다면 서양근세철학은 과학의 노비일 뿐이다. 뭐 잘났다고 그렇게 겁만 주고 있는가?
그런데 철학이 믿고 까불어대는 과학적 세계관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심하게 변하는 것이다. 과학적 진리란 그 추출과정이 어떠했던지 간에 기본적으로 현상세계의 진리며, 따라서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과학적 진리가 절대적인 것처럼 착각을 한 것은 뉴토니안 패러다임이 인류역사에 있어서 너무도 강력한 방법론을 제시했고 그러한 패러다임의 지속성이 너무도 장구한 세월을 걸쳤기 때문에, 또 그리고 아무리 그 패러다임이 파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차원의 전이일뿐(dimensional shift) 그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용성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패러다임을 절대적인 전제로서 받아들인 데서 연유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뉴토니안 패러다임은 이 우주를 보는 하나의 패러다임일 뿐이며, 곧 그것은 서구라파문명의 특수한 문화현상으로 우리는 간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근세서구라파철학은 그러한 과학적 세계관의 상대적 한계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괫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서양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는 철학도들이 마치 근세 서양철학이 제시한 세계관을 인간의 규명에 있어서 가장 제 1의적인 보편원리로서, 그 기본가설의 터무니없는 형이상학적 허구성에 대한 검토가 없이 그것을 절대화하여 볼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관광와서 우리나라의 농악이나 사물놀이를 매우 특수한 우리나라의 문화현상으로 쳐다보고 사진찍고 지랄들을 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근세서양철학을 우리의 농악과 같은 서구라파에 매우 특이한 문화현상으로 신기하게 쳐다보고 사진찍고 지랄해야 할 것이다.
데카르트의 생각의 주체로서의 나 즉 “코기탄스”는 중세기의 전체주의적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구가하는 근세시민사회적 개인의 표출이다. “내가 생각해서 내가 있다”라는 “나”는 근세사회의 시민으로서의 나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적질서에 함몰되어버리는 나가 아니라 신을 향해서 정정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개체적 나다. 그러나 이때 “생각을 하는 나” 즉 과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나에게 있어서 과연 그러한 이성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하고 족보를 묻게되면, 데카르트는 그 과학적 이성의 족보를 또 다시 하나님에게 갖다 대고 있다. 인간의 이성의 빛(lumen naturale, 자연의 빛이라고도 함)은 원래 하나님의 은총의 빛(lumen gratiae, 혹은 lumen supranaturale [초자연적인 빛]라고도 함)을 分受받는 것이라는 생각, 즉 인간의 자연적 이성은 신의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가설, 그러한 인간이해로부터 자기의 철학을 단절시키는데 결코 데카르트는 성공하고 있질 않다. 그는 최고의 실재(Supreme Being)로서 신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의 心身二元論의 체계 내에서도 신은 무한실체(infinite substance)로서, 心身의 二元的 유한실체(finite substance)를 초월한다. 그는 물리적 세계의 모든 운동의 제일원인(the First Cause)으로서 신을 상정했으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proof)에도 힘을 썼다. 결국 이 따위 불철저성, 근세과학이 심정적으로는 무신론을 신봉하면서도 결국 그러한 말을 정면으로 내걸다가는 신부들이나 교황한테 맞아죽을 것임으로 그것이 두려워서 적당히 理神이라는 간판을 내건데서 근세를 출발시켰기 때문에 서양근세는 그 출발부터가 매우 불철저한 미신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미신은 스피노자를 제외한 모든 사상가들에게서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이나 영국의 경험론자라고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이들에게서 이러한 미신은 예외가 없다. 결국 데카르트의 인간이성은 그 족보를 신적이성에게서 물려 받았음으로 결국 그 족보의 뿌리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난 탕아(Prodigal son)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서양근세의 자아발견이라는 근세시민사회적인 노력은 또다시 헤겔의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이라는 신적(우주적) 이성으로 다시 복귀한다. 즉 데카르트의 코기탄스가 헤겔의 절대정신에로 꾸준히 확대되어간 과정이 서구근세철학의 흐름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독일의 매우 후진적 촌스러움에서 발생한 형이상학적인 독단이며, 또 그 독단은 기본적으로 창세기로부터 묵시록으로 끝나는 기독교적 시간관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한 하나의 문화적 가설(cultural hypothesis)에 지나지 않는다. 헤겔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적이면서 목적론적인 우주에다가 근대이성의 옷을 입혀 토미즘적인 신관, 그리고 진보사관, 진화론적 사유, 독일의 국수주의등을 짬뽕하여 만들어놓은 이론이며 동시에 방법론적 모델이다. 그것을 아무리 생성론적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비판철학(Critical Theory)의 입장에서 재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하나의 창조적인 해석학적 왜곡일 뿐이며 헤겔의 본 모습은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즉 기독교문화론적 독단론을 한발자욱도 벗어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불철저성, 즉 인간이성을 인간에게서 다시 추상화하여 어떠한 신적인 실체로 간주한 것은 나의 氣哲學의 제 1원리에 비추어 볼때에 엄청난 오류를 발생시켰다. 즉 서구라파 근세철학에 있어서는 인간존재의 이해는 어디까지나 인간을 넘어선 어떠한 추상적 원리에 의하여 연역적으로 규정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따라서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은 매우 천박한 그 무엇으로 전혀 논의의 고려대상이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데카르트 시대에는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발달되어 있질 않았다. 데카르트는 의학에도 매우 관심을 가진 인물이기는 하였지만 그의 인체관은 기껏해야 하아비의 기계적인 피순환원리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그는 동물의 생명체를 완전한 자동기계장치(automata)로 보았으며 감정이나 의식이 완전히 제거된 물리적 법칙에 의해서만 철저히 지배된다고 보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만 국한하여 생각한다면 나의 존재는 생각의 주체로서만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이 물질보다는 더 확실한(clear and distinct) 것이 되며, 또 나의 정신이 남의 정신보다 더 확실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나의 정신을 제 1의 적인 것으로 내세우는 주관주의(subjectivism)의 원천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대륙의 합리론이나 영국의 경험론이 모두 이러한 데카르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전자에서는 긍정적으로, 후자에서는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실상 데카르트철학을 자세히 뜯어보면 매우 유물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진상이다. 그가 동물을 자동기계로 파악하는 것도 그러한 단적인 표상의 하나이지만, 그의 心身二元論의 논리적 가능성은 결국 心과 身의 이원적 관계에 있으면서도 심이 결국 신의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게되는 것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데카르트 이후의 오케이져날리스트(Occasionallists), 말레브랑쉬나 게링크스의 발전도 결국 이러한 루트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여튼 철학사만 들여다 보지 말고 의학사를 조금 같이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데카르트시대의 서양 의학의 수준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었나하는 것은, 그리고 얼마나 유치한 미신적 독선으로 가득차 있나하는 것은 가히 형언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것이다. 이것은 동양의 음양오행(Yin-Yang and Five Phases)의 우주론적 관계가설(relational hypothesis)이 이미 漢代(대강 B.C. 2세기)에 오면 방대하고 체계적인 인체의 탐구로 발전하여 漢醫學이라는 인체과학을 성숙시키는 것과는 너무도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데카르트 철학이 얼마나 물리적이고 기계적이고 수량적인 세계에만 매달려 있었는가하는 것은 나의 언급이 새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이 매우 편협한 세계의 모습과 또 중세기철학에서 그냥 번지수도 없이 강요된 “자기원인”(cause sui)이라는 언어의 장난으로 규정된 실체관에 매달려 있다고 할 때, 또 우리가 지금 데카르트가 전제하고 있었던 기본가설의 우주모습위에서 살고있지 않다고 할 때에, 우리는 데카르트 철학의 모든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직도 그 골동품적 철학의 말장난을 붙들고 그 가설위에서 또다시 말장난을 늘어 놓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왜 명백히 때려치워야 할 것을 때려치우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가? 어느 미친새끼가 지금 실체(substance)는 자기원인적인 것(cause sui), 즉 자기의 존재를 위하여 타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자기 존재의 원인이 자기자신에서 주어지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데카르트로부터 헤겔형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구근세철학은 이러한 “자기원인”이라는 중세기적 실체정의(definition of substance)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다가는 황금테를 둘러놓고 아무도 쑤시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데서부터 출발한 말장난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러한 말장난을 지금 그렇게 실체를 규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실체(실몸, 물론 서구전통에서는 기하학적 존재의 의미가 강하지만)가 “자기원인”이란 말인가? 실체는 자기의 존속을 위하여 他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애초부터 개방된 依他起性(paratantra-laksana 他의 존재에 관계되어 일어나는 자기동일성)이라고 불교는 말하지 않았던가? 과연 그대의 정신은 타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과연 그대의 육체는 타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과연 그대는 마누라와 씹하여 새끼를 낳지 않는가? 과연 그대는 그대의 부모와 관계된 존재가 아닌가? 과연 우주의 본체는 자기원인적인 것이 되어야만 할 필요가 있는가? 과연 육체와 정신은 자기원인적으로 교섭없이 독존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주의 본체가 “자기원인”적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창조관을 정당화하기 위한 매우 형편없는 중세기적 논리의 잔재며 그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미신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쌩거짓말을 시켰을 때 그것은 쌩거짓말로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쌩거짓말을 믿음의 대상으로만 인간에게 믿도 끝도없이 강요하는 것은 좋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강요를 가능케하기 위하여는 설득의 논리가 마치 이성적 진리의 위장을 빌어 끼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할 때, 하나님 자체는 창조될 수가 없음으로, 즉 하나님은 창조의 주체이고 이 우주는 창조의 대상으로 이분화 되어야만 함으로, 하나님은 창조될 수 없는 궁극자, 즉 자기존재를 위하여 타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원인적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신속에서 “不被動의 使動者”(Unmoved Mover, Prime Mover)라는 말로 나타났고 중세기에 내려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라를 하나님의 존재증명이나 창조관을 증명하는 논리로 써먹었고, 이 논리는 다시 近世哲學의 實體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즉 서구라파 근세철학의 전부를 떠받치고 있는 가장 거대한 기둥인 실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그릇된 개념규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따위 그릇된 철학을 골머리 썩혀가면서 배워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 나는 밥 빌어먹자니까 대가리 속에 집어넣게 되었지만-----.
그런데 왜 이다지도 유치한 엉터리 철학을 데카르트는 했을까? 그 자식이 그렇게도 머리가 나쁜 놈이었을까? 그래도 대수학의 중요한 발명(the invention of co-ordinate geometry)까지 한 놈인데 그 녀석이 그렇게도 몰랐을까? 그렇게도 아둔했을까? 천만에---. 데카르트는 머리가 좋은 놈이다. 이 김용옥이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낫지 못한 놈은 아니다. 나는 대학시험에서 수학을 빵점맞은 놈이니까 데카르트는 나보다는 좀 나은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가 좋은 놈들의 특색은 말을 둘러하는 것이다. 뒤에 요리조리 피하기 위하여 현명한 작전을 세우며 나처럼 말을 함부로 직선적으로 내깔기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나보다 머리가 좋은 놈이기 때문에 그러한 작전에 능하다. 그렇다면 그 미꾸라지 새끼 같은 데카르트의 전략, 그 시대적 음모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샬록 홈즈의 정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지만 데카르트의 최대의 관심은 근세물리학적 세계관의 뒷처리다. 즉 근세물리학자들이 제시하기 시작한 진리체계가 매우 강력한 우주해석의 방법론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시민사회의 새로운 정치권력구조에 부응하는 질서 개편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갈릴레요의 지동설(holio-centricism)은 그 이전의 천동설(geocentricism)이 지지하던 우주질설의 래디칼한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질서는 객관적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바로 인간사회의 정치권력의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계에 있어서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며 지구의 중심은 이태리의 바티칸이며, 바티칸의 중심은 교황이다. 교황은 우주의 중심이며 우주의 모든 권위가 신의 대행자인 교황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우주가 지동설로 그 해석이 바뀌게 되면, 지구는 저 은하계의 먼지가 되며, 바티칸은 저 먼지의 먼지가 되며, 바티칸에 앉어있는 교황은 저 먼지의 먼지의 먼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야말로 쥐좆 끝에 달린 터래기에 터래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금은으로 휘둘르고 헛폼잡고 계시던 교황님께서 어찌 지동설이 마귀처럼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교황청은 그 당시 과학자들을 모두 “통닭”으로 만들어 버릴려고 했다. 즉 종교재판(Inquisition)이라는 명목하에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그위에 앉혀놓은 그 머리좋은 과학자들은 모두 바베큐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과학이라는 것을 무슨 자연의 객관적 탐구로 알고 있다. 참 한심한 개소리들이다. 그대들의 과학 선배님들에게 있어서 과학이란 목숨을 건 투쟁이었으며, 가치세계와 도저히 2원화될 수 없는 우주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소한 칼 맑스의 [자본론]보다 더 강력한 정치질서의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양심있는 철학자, 도미니칸의 중이었던 지오르타노 부루노(Giordano Bruno, 1548~1600)가 그의 코페르니크스 천문학과 범신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에 장작더미위에서 “통닭”이 되어버린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머리좋은 사람들이 통닭이 되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머리좋은 놈들은 머리좋은 놈들끼리 머리나쁜 신부새끼들에 대항하여 연합세력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좋은 데카르트는 이러한 판에 물리학자들을 살려 놓을 궁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인의 양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의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을 원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학하는 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구라빨이 약하니까 그 구라빨의 뒷처리는 철학하는 놈들이 아니할 수 없다. 데카르트의 전략은 이러한 것이었다 : 우주의 궁극적 본체로서 정신과 물질의 두 실체를 설정하자. 그리고 실체의 정의에 있어서 신부놈들의 “자기원인”이라는 논리를 빌리자. 그러면 정신은 자기원인이고 물질도 자기원인이 된다. 그러면 정신과 물질은 서로 교섭작용이 없다. 그렇게 해놓고 정신은 신부놈들에게 먹고 떨어지라고 주고 물질은 과학자들에게 먹고 떨어지라고 주자! 그러면 신부와 과학자는 서로 서로 자기원인적 독립적 법칙을 가지게 될 것임으로 서로 싸움을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기발한 작전은 기막히게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음모였다. 인간의 이해가 정신과 물질이라는 서고 교섭하지 않는 이원적 실체로 갈라지게 되었다. 물질은 정신이 없는 물질이 되어버렸고, 정신이 물질이 없는 정신이 되어버렸다. 물질은 죽은 것이 되어버렸고 정신은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다. 과연 그런가? 이것은 데카르트철학의 최대의 빵구며, 인류근대사의 최대의 빵구다! 데카르트는 단순히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세운 전략이었으나 그것은 뒤에온 뉴토니안 패러다임과 함께 약 3 세기 이상 인류사를 지배하게 된다. 그러한 心身二元論의 가설 위에서 모든 과학적 탐구가 진행되게 된다. 육체와 정신의 갈등 운운하면서 일기장에 펜을 놀리고 있는 그대들은 모두 데카르트주의자(Cartesian)일 뿐이다.
나의 氣哲學은 이러한 데카르트의 2원론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나의 몸은 나의 氣일뿐이며 그것은 육체와 정신이라는 언어적 구분자체를 거부한다. 육체적 현상이든 정신적 현상이든 그것은 모두 氣의 다른 양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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