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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Humanities

데카르트 철학의 특징

by Moonshot Luxury 2016. 11. 7.

1. 외부 실재세계의 본질 이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확립

사유적 실체와 연장적 실체의 이원론적 구분은 앞서 논했듯이 우리의 실체화 의논리에 따른 것이다. 전체성, 동일성, 무차별성에서 벗어나 분리화하고 대상 화,고정화하는 경향의 인간적 사고의 논리에 따라 이원적 실체론이 귀결되는 것이다. 자연에 있어서의 움직이는 힘과 움직여지는 것, 활동하게 하는 힘과 활 동하는 것이 분명 하나의 운동, 하나의 활동 안에 함께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의 논리는 이들 두 양상을 서로 분리시킨다. 그리하여 움직이게 하는 활동 적인 것은 의식작용이고 사물은 단지 움직여지는 수동적인 물질일 뿐이라는 정 신과 물질, 능동성과 수동성의 이원화를 빚는다. 다시 말해 주객 미분의 봄의 활 동을 놓고 보는 자()와 보아진 것()을 구분하는 것이 인간의 차별성의 논리 이다. 이처럼 사유주체와 사유된 물질 객관을 이분화함으로써 결국 시공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은 활동성이 없는 죽은 기계, 연장적 실체일 뿐이라는 근 세의 자연과학적 자연개념이 성립하게 된다.

 

데카르트의 연장적 실체에서 나타나는 근세 자연과학적 자연의 의미를 바르 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고중세의 자연 이해와 구분지어볼 필요가 있다. 고중세에서 자연은 그 스스로 그러함, 스스로 그렇게 됨을 의미한다. 만물이 스 스로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은 자연이 그렇게 되어야 할 바를 그 자체 내에 지 니고 있다는 뜻이다. 즉 만물이 자기 자신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 서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운동은 자연물이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운동이다. , , 공기, 불이 각기 그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가 지며, 자기 자리를 찾아 운동하는 자연물은 자기 자리에 도달하면 그 때 비로소 정지할 수 있다. 자연물이 각각 자기 자리가 다른 것은 그 각각의 본성이 질적 으로 다르기 때문이며, 자연에서의 이러한 질적 차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 는 것이 지상계와 천상계의 질적 구분이다. 자연물의 운동 과정을 그것이 미래 에 위치하게 될 자리, 즉 운동의 목적지에 따라 목적 지향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곧 운동의 힘이 자연물 자체에 목적인으로서 내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 연에서의 변화 및 성장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의 능동적 운동이 며,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실현시켜 가는 생성적인 운동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 연관을 자연의 운동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목적론적 자연관 이라고 부르며, 다시 그 목적이 외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 본성 적으로 내재된 것이라는 점에서 목적 내재적 자연관이라고 부른다. 나아가 자연 은 목적으로 나아가는 운동의 힘 뿐만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달한 후 그 운동의 끝, 즉 죽음도 그 본성 안에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기체적 자연관이라고 도 할 수 있다.

 

근세로 들어오면 자연은 더 이상 그 각각의 본성에 있어 질적으로 서로 구분 되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천상계와 지상계의 구분을 포함해서 모든 종래의 질적인 구분, 존재의 계층적 다양성의 의미는 사라지고, 모든 존재하는 것의 차 이는 오직 양적인 차이로 환원된다. 따라서 사물 자체가 본래 속해야만 하는 본 래적 자기 자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의 운동은 더 이상 자 신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자발적인 운동으로 설명될 수가 없다. 운동은 더 이상 최고선의 궁극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자연이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 아니라 단지 자연이 지닌 획일적인 관성의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이다.22)즉 가야할 바가 없는데도 사물이 움직이게 되는 것은 스스로 움직이고자 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에 의해 피동적으로 움직여지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일 뿐이다. 도달하여 멈춰 서고자 하는 자기 자리가 없으므로 한 번 움직 여진 것은 스스로 멈출 줄 모르고 계속 관성에 의해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머 무르고자 하는 바가 없는 데도 사물이 멈추는 것은 스스로 멈추고자 해서가 아 니라 다른 것의 저항에 의해 제지받기 때문에 멈추는 것일 뿐이다. 자연은 더 이상 스스로 생동력을 갖고 움직이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밀 때 밀려가 고 남이 막을면 멈춰서는 생명력 없는 수동적인 기계로 이해될 뿐이다. 이처럼 자연을 자발적 활동성이 없이 수동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이해하는 자연관이 바로 기계론적 자연관이다.

 

이와 같이 주객대립의 이원론은 기계론적 자연관을 성립시키는데, 근세 이후 의 자연과학이나 그에 의해 세례받은 실증주의적 사고는 결국 이러한 기계론적 자연관에 기반을 둔 것이다. 실증주의적 사고가 철저화되면 궁극적으로 실재하 는 것은 시공 안에 위치한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연장적 사물이고, 그에 반해 주 관적이고 심리적인 사고는 그런 물리적 실체의 부수현상일 뿐이라는 자연주의적 일원화의 길을 가게 된다. 의식활동성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초월적 주 관주의로의 길을 열어준 데카르트 철학이 다시 그런 자아를 실체화하는 과정에 서 결과적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을 확립하여 실증주의적인 객관적 자연주의의 기 틀을 마련한 셈이다. 실증주의적 전통에 이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계속되는 자 연주의적 일원론에 따르면 주관성, 심리성, 내면성은 우연성과 비실재성과 상대 성을 대변해주며 반대로 객관성, 물리성, 연장성이 참된 실재성과 보편성을 말해 준다. 즉 사고와 정신이 배제된 기계적 연장성만으로 특징지어진 자연물, 다시 말해 수학, 물리학의 탐구대상이 되는 객관적 사물만이 본래적이고 1차적 의미 에서 실재하는 유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사물들의 자연 은 자발적 활동성이 없는 수동적인 죽은 기계이며, 시공적인 연장성만을 본질로 하는 대상물로서만 이해될 뿐이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오로지 명석판명한 관념을 가지는 인간의 정신 만이 자연 안에서 예외적으로 사유적 실체로 존재할 뿐이며, 그 이외의 다른 모든 존재, 즉 무생물 뿐 아니라 식물 동물의 생명체까지도 모두 시공간 속에서 기계적 필연성에 따라 움직이는 연장적 실체로 이해된다.

 

2. 남는 문제

데카르트에 의해 발견된 사유활동성으로서의 자아는 본래 연장적 물질세계를 그 사유대상 내지 사유결과로서 지향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통일적 원리이었는 데, 데카르트 자신의 실체화의 논리에 따라 연장적 실체와 존재론적으로 구분되 는 또 다른 존재방식의 실체로서 축소 해석됨으로써 결국 자신 밖의 일체의 객관 세계와 대립적으로 관계하는 외로운 유아론적 인식주관으로 그치게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대립되는 사유적 실체와 연장적 실체의 이원성의 매개를 데카르트 가 신 안에서 찾았다는 것은 결국 그 문제를 인간 이성 내지 의식 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포리로 남겨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밖에 물질세계가 존 재하고 그것도 나의 관념이 나타내는 모습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신이나 알 수 있고 신이나 보증할 수 있는 것이 되버리고 만다. 결국 자아는 그런 신의 성실 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내 밖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거나 아니면 영원히 나만의 사적이고 심리적인 관념세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괴로워하면서 살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와 같은 이원론과 유아론이 데카르 트 이후의 철학자들에게는 철학이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로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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