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법론적 의심의 전개과정
데카르트의 의심은 바로 이런 확실한 앎을 찾아내기 위해 고안된 방법론적 의심이다, 그는 한 때 참이라고 생각한 많은 인식들이 후에 거짓으로 드러난 경 우가 있음을 경험하고는 그처럼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배제된 앎만을 확 실한 앎으로서 인정하기로 마음먹는다.1)어떤 인식이든 그것이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다면 설사 그것이 아직은 거짓이라고 증명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언젠가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기에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 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 인식의 토대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앎은 그 자체 내에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그런 앎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앎이 거짓일 수 없는 그런 확실한 앎 인가?
우리의 앎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험적 인식, 즉 눈이나 코 등 우리의 오판 을 통해서 얻어낸 인식이 우리의 전체 인식의 토대가 될 수 있을만한 그런 확식 한 앎인가? 다시 말해 경험적 인식은 그 자체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한 앎인가?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참이라고 생각한 경험적 인식이 후에 거짓이라고 밝혀진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존재한다면 일체의 경험적 인식은 그것 역시 그 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확실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리 고 우리는 실제로 오관을 통해 얻은 인식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경험, 즉 "착각" 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2) 멀리 있는 형체를 보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가가 보니 마네킹이었다거나, 비소리를 들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소리였다거나, 그런 감각 상의 착각을 경험한 적이 있다. 우리의 경험적 인식은 그것이 착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즉 착각이라는 의심가능근거를 배제하지 못하기때문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다시 반문한다. 감각 상의 착각은 멀리 있는 아주 작은 것에 대해서나 발생하지, 감각하는 자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에 대해 서는 착각이 일어날 수 없다.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이 책이라든가 내 손에 연필 을 쥐고 있다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까지 착각한다면, 이는 미친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까이 있는 사물의 감각적 앎에 대해 거짓일 수 있는 가 능근거로서 착각을 제시하는 것은 정상인과 미친사람의 구분을 무시하는 것이am 로 옳지 못하다.3) 그렇다면 가까운 것에 대한 감각경험적 앎은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인가?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다시 제 2의 의심가능근거를 제시한다. 내가 지금 손 에 연필을 들고 눈 앞에 책을 보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할지라도, 그 확신이 거 짓이라고 밝혀지는 그런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꿈"의 경우이다. 4) 꿈에서나는 연필을 들고 책을 읽고 있다고 경험하지만 실제로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눈감고 자고 있을 뿐이다. 내가 착각일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 모든 내 주위의 것에 대한 감각경험은 꿈일 수도 있다. 즉 실제와는 다른 앎, 거짓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 꿈이 아니고 각성상태라는 자각이 꿈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는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 속에서도 그것이 깨어 있는 현실이라고 경험하 기 때문이다. 결국 감각경험적 앎은 그것이 착각 내지 꿈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확실한 앎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감각경험적 앎이 아닌 수학적인 관념적 앎은 어떤가? 2+3=5라는 것은 감각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아는 것이므로, 꿈 속에서도 이성이 바로 작동하는 한 그것은 참이라고 간주될 것이므로 이에 대해 꿈이 의 심가능근거로 제시될 수는 없다.5)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확실한 앎인가? 이에 대해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성 전체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 즉 인간의 이성 전체를 기만하는 "악령"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들어 수학적 관념적 앎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밝힌다.6) 그런 악령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의 수학적 판단이 거짓인지 참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악령이 있을 수도 있고, 따라서 그런 악령의 조작에 기만되어 우리의 모든 관념적 앎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그런 거짓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그런 앎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일 수 없는 것이다. 7)
감각적 앎이나 관념적 앎은 착각이나 꿈 또는 악령의 의심가능근거를 배제하 지 못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앎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의심가능하 고 언제라도 거짓으로 밝혀질 수 있으며, 절대적으로 의심불가능한 확실한 앎이 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실재도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인가? 어떤 것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알 수 없는 것인가?
모든 대상적 인식을 의심가능한 불확실한 것으로서 배제한 후, 데카르트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의심주체에로 물음의 방향을 바꾼다. 나는 감각적 인식에 있어 착각하거나 꿈꾸고 있는 것일 수 있으며, 관념적 인식에 있어 악령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럴 경우 감각 대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닐 것 이며, 관념적 진리도 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만당할 수 있기 위해서 라도 기만당할 수 있는 자로서의 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감각적으로 알려진 나 자신은 꿈꾸어진 나일 수 있기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더라도, 그런 꿈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의식활동으로서의 나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 닌가? 의식의 대상은 그것이 착각과 꿈과 기만의 결과로서 모두 다 거짓일 수 있지만, 그것이 착각이든 꿈이든 기만이든 그런 의식활동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 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다시 그것을 의심하고 부정할 경우에도 그렇게 의심하 는 나 자신은 분명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그 자체 다시 의심이 가능하지 않은 확실한 것이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 이 명제는 필연적으로 참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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